“아무개요? 목사님께는 이런 말씀 드리기 뭣하지만... 그 친구는 사실 형편없는 사람이에요. 제 앞에서 그 친구를 집사라고 부르지 마세요. 제가 아는 어떤 사람은 자기가 인생 살면서 만난 가장 나쁜 사람 두명 꼽으라면 그사람이라고까지 해요.”
한때 우리 교회를 출석했던 성도를 두고서 어떤 분이 이렇게 말했다. 밥 먹다가 이런 이야기를 들었는데 입맛이 싹 가셨다. 도대체 인간관계를 어떻게 하고 다니셨길래 이런 지경까지 이르렀을까. 도대체 어떻게 사회생활을 하셨길래 누군가의 기억에서 못된 사람 금메달 결정전에까지 진출하셨을까. 듣는 순간 얼굴이 화끈거렸고 절반의 잘못이 내게 있다고 느껴져 하루종일 우울했다. 생각해보면 크리스찬들에 대한 평가가 땅에 떨어진지는 이미 오래다. 예수님은 성도들을 가리켜 “너희는 세상의 빛이요 소금이요 향기요 그리스도의 편지다!” 라고 하셨는데 실상을 보자면 예수님의 기대와 거리가 멀어도 너~~~무 멀다. 세상의 빛이 아니라 세상의 빚(채무)이 되어버린 성도들, 교회가 세상을 염려해주던 시기는 지났다. 지금은 세상이 교회를 염려해준다. 교회는 자정능력을 상실하였고 교회 안에서 일어나는 시시콜콜한 문제들은 법정에 서고서야 끝이 난다. 소금이라고? 너무나 소금스러워서 짠돌이가 되어버렸는지도 모른다. 향기가 아니라 악취를 풍기는 것은 아닌지, 반가운 편지가 아니라 부담스런 세무고지서 같이 된 것은 아닌지...
성경은 교회를 위해 봉사할 일꾼들의 자격을 논하면서 외인들(불신자들)에게도 칭찬을 듣는 사람이어야 한다고 말한다.(딤전3:7) 집사의 자격을 논하면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며 사람들에게 칭찬 듣는 사람이어야 한다고 말한다.(행6:3) 교회 안에서만 사람 좋아 보이는 장로님, 권사님이면 무슨 소용이 있으랴. 하나님은 우리의 믿음을 저울에 올려놓고 달아보시는 분이신데 말이다. 사람은 속일 수 있을지 몰라도 하나님의 눈은 피할 수 없다. 그래서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하는 사람도, 자기가 가진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온몸을 불사르게 내어주는 사람도, ‘소리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가리’ 라고 가차없이 평가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생각만해도 좋은 사람, 든든한 사람, 감사한 사람, 위로가 되는 사람, 힘이 되는 사람. 그런 사람이 되게 해달라고 기도하자. 이제 곧 성탄카드를 쓰고 신년 연하장을 발송하는 시간이 다가온다. 나를 알고 있는 사람들이 나를 뭐라고 평가할까? 우리가 진짜 크리스찬이라면 사람들의 그런 평가에 목숨을 걸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