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세기 종교개혁 운동(1)

홍삼열 0 5,970 2012.03.27 14:33

종교개혁이란 용어는 유럽의 기독교를 가톨릭과 개신교로 나누게 한 16세기의 독특한 종교운동을 가리킵니다. 물론 이전에 이와 유사한 방향의 개혁운동들이 있었습니다. 12세기의 왈덴시안파(Waldensians), 14세기의 위클리프파, 15세기의 후스파가 그런 예입니다. 그러나 이런 개혁운동들은 16세기의 종교개혁과 비교할 때 파급효과가 그리 크지 않았습니다. 그런 연고로종교개혁”(the Reformation)하면 으레 16세기 유럽의 종교개혁운동을 의미하는 단어로 사용되었던 것입니다.

 

16세기 이전에 이미 개혁을 부르짖는 사람들이 있었고 그들이 힘을 합쳐 교회의 개혁을 시도했는데, 왜 그들의 개혁은 실패로 돌아갔고 16세기의 개혁은 대성공을 거두었을까요? 16세기의 개혁이 유럽전체를 뒤흔들어 놓을 정도로 대단한 영향력을 행사한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요? 어떤 사람들은 종교개혁 전야의 상황이 영적으로나 도덕적으로 최악의 상태였다는 사실을 지적합니다. 예를 들어, 영국 국왕 헨리 8세는 자신의 개인 의사인 리나커에게 네 교구의 담임자의 직책, 세 성당의 부담임자의 직책, 요크대사원의 성가대장의 직책을 주었습니다. 리나커가 아직 신부 서품을 받지 않았는데도 이렇게 여러 개의 성직을 하사받은 이유는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왕이 자기 주머니에서 직접 월급을 주지 않고 교회의 여러 직책에서 나오는 돈으로 월급을 지급하기 위해서였죠. 또 한 가지 예를 들면, 프랑스 외교관 안트완은 상(Sens) 교회의 대주교로 임명받았지만 생전에 자기의 교회에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었습니다. 죽어서 자기 장례식할 때 딱 한 번 교회에 들어가 봤습니다. 이상의 두 가지 예에서 우리는 당시 교회의 부패상을 보게 됩니다. 그밖에도 당시 가톨릭교회에는 고질적인 성직매매(simony)의 문제, 성직자의 불륜 혹은 불법결혼문제 등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면 이런 교회의 부패문제가 16세기에 종교개혁 전에만 일어났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이런 문제는 중세 내내 지속되어 온 고질적인 문제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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