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세기 종교개혁 운동(3)

홍삼열 0 4,598 2012.03.27 15:02

16세기의 새로운 상황은 유럽 각국이 자체 세력을 키워나가고 종교의 문제에서 교황의 간섭을 거부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인데, 이것은 곧 교황청의 쇠퇴를 의미합니다. 교황은 더 이상 파문장으로 각 나라를 협박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가령 교황이 프랑스나 스페인의 교회로부터 어떤 중요한 것을 요구하기 위해서는 파문장의 위력만으로는 안 되고 그들과 막후에서 협상을 벌여야 했습니다. 이런 이유로 유럽 각국의 수도에 교황의 사절들(nuncios)을 파견되어 상주(常主)하기 시작한 것이죠. 또한 이 시기에 교황청은 경제적 압박에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이미 아비뇽교황청 시대에 아비뇽에 교황청을 새로 짓고 운영하기 위해 막대한 돈을 지출했고, 그 후 교황청이 둘로 갈라졌을 때 두 명의 교황이 각자의 입지를 견고히 하기 위해 재정을 축냈고, 또한 르네상스 시대의 교황들도 예술을 후원하거나 전쟁을 하느라 교황청 재정에 심한 손실을 입혔습니다.

 

그러면 이런 교황청의 쇠퇴가 16세기 종교개혁과 무슨 연관이 있을까요? 종교개혁가들의 입장에서는 교황권이 줄어들고 각국 국왕의 권한이 늘어가는 것이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우선 개혁을 거부하는 교황을 거슬려 개혁을 시도할 경우 국왕이 방패막이가 되어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루터가 맨 처음 교황을 공격하는 글을 썼을 때 보통의 경우 같았으면 당장 파문당했을텐데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독일 제후인 프레데릭이 그를 지지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특히 당시에는 황제를 선출하는 선거철이었고 교황은 유럽의 세력균형을 위해 프레데릭이 황제가 되기를 바래서 루터를 특별히 봐주었던 것입니다. 만일 이런 정치적 상황이 무르익지 않아서 초창기에 루터가 파문당했다면 그의 종교개혁은 성공을 거두지 못했을 것입니다. 또한 후에 스페인의 찰스가 황제가 된 후 교황이 루터를 파문하고 (더 이상 봐줄 이유가 없으니까) 보름스 국회에서조차 루터에게서 정치적 신변보장을 철회했을 때, 보름스 국회가 끝나고 돌아가는 루터를 비밀리에 납치해서 바르트부르크 성에 보내어 안전하게 살게 한 사람도 다름 아닌 프레데릭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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