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이부동(和而不同)

해초 0 2,191 2020.08.21 16:07
프랑스 말 가운데 "똘레랑스"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영어로는 "Tolerance"로 쓰고 사전적인 우리말 번역은 '관용(寬容)'에 해당하는 말입니다. 하지만 똘레랑스는 관용이라는 말과는 그 의미에서 좀 차이가 납니다. 나를 중심으로 다른 이들을 너그러운 마음으로 바라보는 것이 관용입니다. 반면에 똘레랑스는 나도 여럿 가운데 하나라는 다양성을 인정하는 말입니다. '내가 이러니까 저이도 그럴 것이다' 라는 자기중심적 사고가 아니라 애초부터 우리는 다르다는 의식 속에서 서로를 존중하며 거꾸로 자기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입니다. 다양한 가치가 공존하는 우리 시대에 가장 잘 어울리는 말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때문에 똘레랑스라는 말을 굳이 우리 표현으로 바꾸어 본다면 "화이부동"이라는 사자성어에 적합할 것 같습니다. 논어 자로편에서 공자는 군자를 화이부동(和而不同) 하는 사람이라고 규정한 바 있습니다. 화(和)는 타인의 의견을 잘 조화하는 것이고, 동(同)은 맹목적으로 타인의 의견을 따라가거나 반대로 남에게 같아지기를 요구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니까 화이부동은 똘레랑스처럼 타인과 조화하되 남에게 강요하지 않는다는 의미를 갖는 말이라 할 수 있습니다.

나와 다르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상대방을 헐뜯고 자기 주장을 강요하는 현실 사회를 우리는 살아가고 있습니다. 자기는 옳고 상대방은 틀리다는 근거없는 발상이 난무하는 세상이지요. 이와는 달리 예수님의 가르침은 자기를 부인하고, 하나님의 뜻 안에서 서로를 존중하는 생명 공동체를 강조하셨습니다. 갈등과 분열이 아니라 화목과 조화의 길을 가르쳐 주신 것이지요. 말하자면 똘레랑스와 화이부동을 온몸으로 실천해 보여주신 셈입니다. 그러나 여전히 정쟁으로 찢겨진 현실을 마주하게 됩니다. 게다가 분쟁의 구설수로 끊임없이 교회의 이름이 오르내리는 상황을 목격하게 됩니다. 모두를 위해 자신을 십자가에 내어 주며, 화이부동의 의미를 가르쳐 주신 예수님이 자꾸만 떠오르는 이유입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예수님의 가르침대로 동(同)이 아니라 화(和)를 통해 하나되는 모습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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