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冊)과 만남, 사람(人)과 만남, 소석. 정지원
KLO부대 한국인 사령관.파란만장 일대기
맥아더 장군과 (계인주)대령
항일운동 자손→입신위해 만군중좌→경찰서장도
『1998년 1월 4일 桂仁㧣 육군대령 (KLO부대 한인사령관)이 샌프란시스코 기어리가 자택에서 타계했다. (향년 85세). 이 어른이 맥아더 장군의 특명을 받고 1950년 9월 15일 (인천)상륙작전과 북진 후 압록강변大和島에 잠입, 중공군의 대거참전 정보를 맥아더 사령부에 첩보작전을 펼침 으로서 미국 대통령 최고훈장을 받았다.
『맥아더將軍과 桂仁㧣 대령』(다인 미디어 발행261페이지)은 파란만장한 그의 일대기다. (초판 1998년 12월 30일). 지금으로 부터 21년전인 1997년 1월 이 글을 쓰는 정지원은 계인주 대령과 주 2회씩 만나 그의 파란만장한 일대기를 정리 추고작업을 했다. 근 10개월동안 그분의 자택에서 원고를 다듬었고 마침내 탈고 출판을 앞두고 노환중 심장마비로 타계함으로써 출판은 타게 후 11개월만에 이루어졌다.』
1913년 평안북도 宣川에서 태어났고 아버지 桂信寶 장로가 남만주로 망명 항일운동의 가정이었다.
아버지는 교회와 학교를 세워 민족혼을 고취 중에 일본 관헌에 체포돼 모진 고문 후유증에 시달리 다가 57세로 세상을 떠났다. 그후 계인주 소년은 압제를 피해 만군장교로 입신 키로 했다. 만주군관 학교(4기)를 졸업 소위에서 중좌(중령)까지 진급했다.
한때는 만주 국 주 일본 대사관 무관까지 했다.
일본 패망 후 월남, 서울로 왔다. 미 군정시절 조병옥 경무부장의 천거로 경찰에 투신. 수원, 양주, 성동, 동대문 경찰서장을 역임했다. 경찰 신분은 잠시였고 다시 건군에 참여 육본 정보국 차장겸 첩보분야인 HID대장에 임명됐다.
소령으로 특채되어 곧 중령과 대령이 됐다.
6.25이후 당시 국방부장관 신성모 장관과 사감과 알륵이 생겨 신변의 위협이 있었으나 미8군 스트레킨 중령의 도움으로 일본 동경에서 맥아더 사령관을 만나게 되고 仁川상륙작전에 참여했다.
특명에 의해 계인주 대령은 인천 영흥도에 상륙 했다. 이때가 1950년 8월 초순이였다.
6.25전 부하였던 최규봉 대원등과 미 해군 특수 요원들도 함께 작전에 참가했다.
드디어 인천상륙작전 D데이 전날인 9월 14일 맥아더 사령부로부터 八尾島등대에 불을 켜라’라는 특명이 떨어졌다. 계인주 대령등 요원은 소형 함정에 승선 팔미도 등대에 잠입했고 소정의 작전을 완수했다. 이어 인천상륙작전은 (1950년 9월 15일) 대성공을 거두었다. 그후 계인주 대령등 KLO부대는 압록강변 大和島에 잠입했고, 중공군의 대거 참전을 알리는 첩보 공작을 수행 했다. 맥아더 사령부는 계인주 대령에게 『미국 대통령 최고훈장』을 수여했다.
그러나 한국 육본은 계인주 대령을 탈영병으로 처리했으나 그후 모든 공적이 밝혀 짐으로써--- 육군대령으로 부활했다. 그야말로 파란만장의 생애였다. 이런 모든 내역이 이책에 담겨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