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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회 걸쳐 조선인 졸업생은 8백10명에 불과

MorningNews 0 3,698 2019.03.27 07:38

책(冊)과 만남, 사람(人)과 만남, 소석. 정지원 


18회 걸쳐 조선인 졸업생은 8백10명에 불과 

이충우(李忠雨) 저(著) 경성제국대학『京城帝國大學』22년 영욕(榮辱)

 “수재(秀才)들 구름같이 몰려 학문(學問)의 갈증 다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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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성제국대학(京城帝國大學)--- 비록 22년의 단명(短命)이었지만 영욕(榮辱) 이 무섭게 점철된 세월이었다. 이땅에 처음으로 고등(高等) 신학문(新學問)의 시대를 열고--- 전선(全鮮)의 수재(秀才)들이 구름같이 모여들어 학문(學問)에의 갈증(渴症)을 다투고--- 젊음의 낭만과 정열과 엘리트 의식(意識)이 화사하고---민족(民族)과 일제(日帝)의 현실상황(現實狀況)속에서 의식(意識)의 갈등을 피나게 겪어야 했던 곳 경성제국대학(京城帝國大學) 영욕(榮辱) 을 떠나서 이땅의 새시대는 이곳으로 부터 막(幕)이 오르기 시작했다---.   ]   


도서출판 다락원은 이충우(李忠雨) 저(著) 경성제국대학(京城帝國大學) (297페이지)을 펴냈다. (1980년 3월)제한된 지면이기에 일석(一石) 이희승(李熙昇) 법문학부(法文學部) 2회 졸업•국어학자•단국대 동양학연구소장)선생의 경성제국대학『京城帝國大學』 출간(出刊)에 즈음하여를 옮긴다. 

1910년 여름에 일본(日本)이 무모한 한일(韓日)합방을 단행하고, 한반도를 저희들의 낭중의 물건으로 만들기 위하여 갖은 흉계와 음모와 계략을 다써 가면서 탄압과 박해를 가하였다. 그러나 10년이 채 못되어서 기미년 3.1만세운동이 폭발하자, 저들은 간담이 서늘하여 어찌할 줄을 몰랐었다. 이 바람에 무단정치(武斷政治)의 원흉인 총독『미나미 지로우』가 쫓겨가고 『사이도오 미노루』가 새총독으로 부임하여 왔었다.  

그는 회유책의 일종으로 문화정치를 표방하고, 우리 동포들에게도 교육•언론•산업등 여러면에서 어느정도 자유를 주는 척하였었다.  

그리하여 이 무렵에 우리 동포들의 손으로 학교가 많이 설립되었고, 신문도 두어개 창간되었다. 그리고 매우 드물기는 하였지만 기업회사도 몇 개 우리 손으로 이루어진 일이 있었다. 이 중에서 특기할 만한 사실은 우리의 힘으로 민립대학(民立大學)을 설립하려는 운동이 활발이 전개되고 있었다는 것이다. (후략) 이에 일본총독은 민립 대학운동을 억제하고 조선에 나와있는 일본 관리들의 자녀들을 교육하자는 일거양득의 복안으로 『경성제국대학』을 설치하기로 했다. 

총독부는 1923년11월 ‘제국대학설립위원회’를 발족시켰다.  

원서교부때 명칭은 조선제국대학『朝鮮帝國大學』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경성제국대학(京城帝國大學)으로 바꿨다.  

조선이 일본의 식민지인데--- 조선을 ‘제국’으로 인정해주는 꼴이 된다고 해서--- 서둘러 조선『朝鮮』을 경성『京城』으로 변경했다.  

학생수효도 일본인에 비해 3분의1에 불과했다.  

이밖에 『경성제국대학』에 대한 여러가지 자료를 지면이 허락치 않아 아쉽다. 다만 경성제국대학 22년간 조선인 졸업생은 18회에 걸쳐 8백10명이다. 

저자인 이충우 한국일보(문화부차장)기자의 수고가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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